원체 초저녁잠이 많고 새벽잠은 없는 체질이라서,
야근할 일도 술 마실 일도 없는 주말이 되고 보면 오히려 더 일찍 자고 더 일찍 일어난다.
그렇게 일어나면 경인방송에서 메이저리그 중계해 줄 때까지는
마음 내키는 대로 DVD나 비디오를 골라 보곤 하는데, 일요일인 어제는 바론의 대모험.

테리 길리엄 감독 작품.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원제의 Baron이 남작이란 뜻이니, '뮌히하우젠 남작의 모험' 정도가 직역일텐데, 어찌된 일인지 '바론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이 되어 버렸다.
하긴, 'Brazil'이 '여인의 음모'가 되어 버린 걸 생각해 보면 오십보 백보..^^
- 저 제목에서 웬지 에로를 느껴버린 전 막장인 건가효 ㅋ
3부작의 첫 머리를 이루는 'Time Bandits'마저 '4차원의 난장이 E.T.'라는 제목으로 국내 비디오 출시되었으니, 이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줄거리 보기 (스포 조금)
터키 군에 포위된 도시에서 어느 극단이 '뮨하우젠 남작의 모험'이라는 제목의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이때 어떤 늙은이가 칼을 찬 채 무대에 난입하여 이건 거짓말이라고,
진실은 바로 자기 때문에 터키 군이 이 도시를 공격하고 있는 거라면서 예전의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때 살짝 돈키호테 분위기)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어릴 적 동화책으로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을 읽었다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
발이 빠른 부하로 하여금 멀리 떨어진 비엔나의 황후에게 훌륭한 와인 한 병을 받아와서 술탄에게 바치고 내기에 이겨서 보물을 얻게 되지만, 그로 인해 터키 군과의 충돌이 발생하게 되는데.
- 개인적으로 어릴 적 읽은 동화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총알 하나 필요없이 기름진 햄만으로 하는 오리 사냥.
긴 줄 끝에 기름진 햄을 매달아 연못가에 던져 놓으면 첫 번째 오리가 그걸 삼키지만 너무 기름진 나머지 바로 항문으로 쏘옥,
그걸 그 다음 오리가 받아먹지만 다시 쏘옥, 이걸 수십차례 반복한 후 다시 햄이 있는 쪽 줄의 끝을 회수해서 수십 마리의 오리를 생포.
역시 어릴 적부터 이런 류의 이야기에 약했구나..ㅡㅡ;;
하여튼, 터키 군의 포격 속에 극장은 무너지고, 아무도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세상이라면 이제 그만 편히 쉬고 싶다고 말하는 남작.
극단주의 딸인 꼬마 아가씨의 믿음 속에 다시 젊어진 남작은,
시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도시를 구한 응원군을 구하러 떠난다.
(이때는 살짝 피터팬과 웬디 분위기)
여인네들의 속곳으로 만든 기구를 타고 달나라로, 달나라를 떠나 이번엔 에트나 화산 속으로,
다시 화산 밑바닥을 통해 지구 중심을 지나 대척점인 남태평양으로 떨어져서는 거대한 괴물 물고기의 뱃 속으로 이어지는 모험.
그 과정에서 예전 부하들을 다시 만나 이들을 데리고 도시로 돌아온다.
- 화산 속 불카누스와 비너스 에피소드에서는 우마 써먼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재현한다.
19금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단 말인가..@@
처음의 극단 배우들이 이후 에피소드에서도 1인 2역으로 다시 등장하곤 하는데,
그 여배우들 틈에서도 군계일학 격이라 괜찮구나 생각하고 있던 그 여인네가 비너스 역으로. 가만히 보니 우마 써먼이다.
젊을 때는 정말 매력적이었구나.
(이 글 쓰면서 네이버도 검색해 봤는데, 요즘 쇼핑몰에서의 DVD 설명에는 우마 써먼 이름이 출연 배우진의 맨 첫머리에 있다. 이건 좀 아닌 듯...ㅡㅡ;;)
어쨌든, 비록 늙고 지친 남작과 그 부하들이었지만,
그들은 모처럼 왕년의 기량을 발휘하여 터키군을 모두 물리치고 도시를, 그리고 시민을 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작의 죽음인 듯 아닌 듯, 현실인 듯 환상인 듯한 뒷이야기...
줄거리만 놓고 보면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몇몇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화면으로 구현한 판타지 영화.
하지만, 어릴 적 동화를 생각하며 키득키득 웃고 있자면, 그 와중에 여러 가지를 꼬집는, 가슴을 싸하게 하는 대화들도 곧잘 등장한다. 관료제, 이성,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
그런데, 그 풍자에 속이 시원하다기보다는 우리가 과연 저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싸워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루저 마인드가 엄습.
우리 앞의 그들은 이미 우리들의 꿈마저 장악하려 하고 있는데.
고개를 돌려본들 청산이 있을 리 만무하고 현실은 그저 시궁창.
가슴이 무거워진다.
무거운 마음을 달래려 트로미오와 줄리엣을 갈아 끼우는 도중,
마나님이 눈을 뜨는 통에 급포기. 이건 다음 주에.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